11월 4일(주일) 칼럼 '저기가 희망이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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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관리자 | 작성일 | 2018.11.03 05:49 |
며칠 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어느 교수님의 개인 사진전시회에 방문하였습니다. 교수님 부부가 우리 교회 집사님들이십니다. 부인 집사님은 화가로서, 남편은 사진을 부인은 그림으로 부부 전시회를 여셨기에 사진과 그림을 동시에 감상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강렬한 색상으로 그려진 엄청난 크기의 국내산 김치와 투우의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활력(活力)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흑백으로 구성된 사진 작품들 중에서 저의 눈에 인상적인 사진 한 점을 보았습니다. 그 사진에 시선이 머무는 순간, 충청도 출신은 아니지만 대전에 산지가 거의 13년은 되었기 때문에 충청도 사투리가 독백(獨白)이 되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저기가 희망이여.”
그 사진은 교수님의 작품 설명에 따르면 지붕 위에 골탄을 덮고 방수 페인트를 칠한 어느 산동네 작은 주택 지붕 위에 아침 햇살이 비추이는 광경이었습니다. 지붕 위의 굴곡진 부분들이 마치 그들의 염원(소망)을 몸부림치는 역동적 표현으로 묘사했는데, 멀리 너머에 보이는 조그마한 십자가는 그들의 염원에 대한 간절한 기도의 표현이라고 하였습니다.
흑백처리 된 작은 지붕은 온갖 양태(樣態)로 뒤엉켜 사는 우리의 세상을 보는 듯 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군상(群像)들, 사람들의 절규, 잡담과 한숨소리, 기쁨의 외침 같은 것들이 지붕 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선을 떼어 지붕 저 너머를 보니 마치 아득한 바다의 수평선 끝처럼 보이는 한쪽에 교회의 십자가 종탑이 작고 희미하게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을 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장소라는 감동이 그 사진을 관람하는 순간 제 마음에 큰 소리로 울렸습니다.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 한 곳에 서 있는 교회야말로 온갖 사연과 일들로 지쳐있고 아프며 고단해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와 영원한 생명의 길로 안내를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희망입니까? 사람들의 죄와 죽음과 온갖 불행 고통을 홀로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머리로 모신 교회야말로 세상의 어둠과 혼동을 비추는 빛이요 등불로 존재합니다. 교회가 주님을 세상에 비추는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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