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주일) 칼럼 '‘내 탓이오.’에서 ‘네 탓이오.’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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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관리자 | 작성일 | 2019.11.09 05:51 |
과거 한 때 우리 사회에는 일부 종교계와 시민들 중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의 우리 사회를 회고해 보면, 따뜻하고 겸손했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도 정치적 이념적 종교적 도덕적 갑론을박(甲論乙駁)이 있었고, 사회를 향한 개탄이나 탄식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내 탓이오.’라는 운동을 사회 계몽 캠페인으로 전개했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한 편으로 멋있었던 것은 그 시절의 분위기는 어려운 격동(激動)들의 연속 중에서도 국민들의 가슴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과 낙관(樂觀)이 포기되지 않았었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기대도 있었고, 때로는 논쟁하기도 하였지만 서로에게 파이팅을 보내며,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내 탓이오.’라는 캠페인이 국민들에게 상당히 공감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내 탓이오.’라는 자기반성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내 탓이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반성 대신 책임회피나 합리화,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잘못되고 나쁜 언행이 일반 국민들에게도 학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9년 11월 현재 시점에서 우리 사회는 ‘내 탓이오.’에서 ‘네 탓이오.’의 시대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언(過言)일까요? ‘내 탓이오.’에서 ‘네 탓이오.’로 멈추지 말고, 다시 ‘내 탓이오.’ 시대로 가야할 텐데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반성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네 탓이오.’라고만 말하는 한,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회복되기 힘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기 위해 게네사렛 호숫가에 가셔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 시몬 베드로에게 가셨습니다. 그 때 시몬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바르게 만나게 될 때 제일 처음 하게 되는 진정한 고백은 중생(重生)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동일합니다. 그것은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하는 신앙고백입니다. ‘내 탓이오.’하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 사회가 ‘내 탓이오.’에서 ‘네 탓이오.’로, 그러나 다시 ‘내 탓이오.’라는 소리를 서로에게서 들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죄인입니다.’, ‘내 탓입니다.’, ‘저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하는 이런 고백과 참회를 하고, 또 그런 고백과 참회를 진지하게 받아주며, 서로가 성숙해지는 모습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 풍요해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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