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주일) " 성탄절을 꼭 지켜야 하는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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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관리자 | 작성일 | 2023.12.23 06:18 |
우리 교회는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이라는 세 개의 절기를 지킵니다. 이 세 개의 ‘절기(festival)’를 지키라는 말이 성경에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안식일과 일곱 개의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다른 성경에도 언급되기는 했지만 주로 레위기 23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안식일과 함께 나오는 일곱 개의 절기 이름은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칠칠절, 맥추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한 날로 정하신 절기에는 희생의 제물을 바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후로, 구약성경에 기록된 율법들을 ‘율법주의-형식적으로’ 지키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지켜야 했던 율법의 요구를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충족시키시고 완성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했던 절기를 율법주의적으로 지키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경계의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갈 4:10) 갈라디아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서(갈 2:4) 예수님을 믿더라도 구약의 율법과 절기를 반드시 지켜야만 구원받는다고 잘못 가르치는 유대율법주의 거짓교사들에게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며, 인간 자신의 행위와 공로나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증거했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진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구약시대로 돌아가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고, 절기를 지켜야만 구원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나오는 율법과 절기들과 관련한 말씀들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으로 세상에 오실 구원자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상징적이며 영적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입니다. 율법주의를 버리기 위해서 율법이 기록되어 있는 구약성경을 볼 가치가 없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맥추감사절이나 추수감사절이라는 ‘특별한’ 날을 정하고 예배하는 이유는 그 날,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깊이 새기자는 것이며, 12월 25일이 예수님 성탄의 정확한 날짜가 아니지만 – 성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으나 명백한 사실은 2천 년 전 즈음에 예수님께서 성육신, 곧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 365일 내내 예수님의 탄생의 은혜를 새김이 마땅한 일이지만, 성도들이 교회로 모일 때 ‘특정한 날 하루’,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하여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더욱 특별히’ 기억하며, 간절하고도 뜨겁게 감사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에 분발을 결심하자는 목회적이며 교육적인 취지로 성탄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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