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주일) " 미소와 눈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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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관리자 | 작성일 | 2024.02.10 07:29 |
2023년 아시안컵 축구경기대회가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힘든 사투를 벌이며 한국 국가대표팀은 준결승 4강전까지 올라갔고, 마주한 요르단 선수들보다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량이 더 우수하다는 생각에 국민들은 승리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경기의 결과는 우리나라가 0:2로 참패하여 결승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모두 안타까움을 가졌고, 최선을 다했던 선수들 역시도 안타까워했을 것입니다. 대망의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게 패한 후 손흥민 선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고, 눈물마저 흘렸습니다. 안타까워하는 선수들 그리고 눈물 흘리는 선수들이 있는 와중에 미소를 짓는 이가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클린스만 감독이었습니다. 꼭 이기고 싶은 경기에서 패배했는데, 우리나라 감독이 웃고 있다니요! 망연자실(茫然自失)해서 실없이 웃은 미소였을까요? 며칠 전 FIFA 랭킹 130위였던 말레이시아와의 예선전 경기에서 FIFA 랭킹 23위인 우리나라가 간신히 비겼을 때도 해맑게 미소를 지었던 클린스만 감독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초상집에 갔는데 유족들 앞에서 웃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족들은 심히 슬퍼 눈물을 흘리지만 방문한 조객들도 함께 슬퍼합니다. 결혼하는 잔칫집에 가서 슬퍼 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랑 신부도, 가족들도, 함께 한 하객들도 모두 웃습니다.
그러나 슬프고 아파서 눈물 흘리는 자, 안타까움으로 탄식하는 자, 실망과 억울함으로 분노하는 자 앞에서 담담해하고 눈만 멀뚱 뜨고 있는 자, 미소를 짓고 쾌활하게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대범한 사람입니까? 적어도 그 사람은 가족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사랑하는 친구나 지인은 아닐 것입니다. 무정하거나 냉정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그냥 남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살고 있던 청년 나사로가 죽은 집에 가셨을 때 우셨습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Jesus wept.).”(요 11:35) 가나의 결혼 잔칫집에 가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을 때는 분명히 웃으셨을 것입니다. 자기 사람들을 위하여 웃기도 하시고, 울기도 하신 예수님은 진실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셨음을 봅니다(요 13:1).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때에 맞는 웃음(미소)과 눈물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인 이웃들에게, 함께 한 국민이 된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배가(倍加)시키며, 슬픔과 곤경에 처했을 때도 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여 위로받고 괴로움을 이겨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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