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주일)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라고 하셨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가르침 앞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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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관리자 | 작성일 | 2025.06.27 19:15 |
우리 혜천교회에서 차(車)로 20여분 거리에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 위치한 대전과학기술대학교 홍은연수원이 있습니다. 학원에서 부르는 명칭인 홍은연수원을 가리켜 혜천교회 교인들은 홍은기도원이라고도 부릅니다. 이곳에서 차로 불과 5분 거리에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독립운동가, 역사학자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의 생가지(生家地,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6호)가 있습니다. 13세 어린 나이에 사서삼경(四書三經) 공부를 하여 신동(神童)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국내에서 국사(國史) 연구와 교육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을 하시다가 만 30세의 나이인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애국지사(愛國志士)이십니다. 1929년, 조선총독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 받고 만주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후 1936년, 고문 후유증과 지병들로 인하여 향년 57세로 옥사(獄死)하셨습니다. 신채호 선생의 사관(史觀)은 민족주의적 역사관으로, 무신론자(無神論者), 무정부주의자(無政府主義者)로 알려지며, 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이 불가피함을 주장하셨던 분으로 알려집니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나라와 민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셨던 훌륭한 선조(先祖)이십니다. 선생의 일화(逸話) 중에 세수를 할 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빳빳하게 세워 했다는데, 그 이유는 일제 치하에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강직한 독립운동가의 기개(氣槪)를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KBS WORLD KOREAN, "붓을 칼처럼 휘두른 독립운동史의 신화, 신채호", 2010. 09. 03.).
신채호 선생이 남기신 가르침 가운데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문장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1908년 8월 8일 대한매일신보에 기고한 사설의 한 문장으로 알려집니다(최창희,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라”, 중도일보 2020. 04. 22.). 대전광역시 중구 문화동 1-40에 소재한 서대전공원에는 신채호 선생의 동상과 그 동상 아래에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저도 그 동상 곁을 종종 지날 때에 그 글귀를 묵상합니다. 우리 인생의 일들과 나라의 지나간 역사를 마음에 새기며 의미를 정리한다면 나라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애국충심(愛國忠心)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역사를 아는 자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강(自强)하지 못하면 우리가 원하는 자유와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도 가슴에 새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너희의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을 명령하신 적 있으십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신 5:15 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셨던 은혜의 일과 악인들에게 행하셨던 심판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뿐만 아니라 삼가 경성(警醒)하여 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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