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주일) 칼럼 '안시성을 향한 예언과 운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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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관리자 | 작성일 | 2018.09.29 04:43 |
추석 명절 연휴기간에 가족과 함께 영화 <안시성>을 보았습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정복하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가던 중에 길목에 위치한 안시성을 함락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안시성은 성을 지키는 병사가 오천 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용맹한 성주(城主) 양만춘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당 태종은 이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의기양양하게 안시성을 여러 차례 공격하였으나 안시성을 점령하는 데 실패하고 퇴각(退却)합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배역은 아니지만 고구려 신녀(神女)의 등장이 눈길을 끕니다. 신녀는 고구려 주몽 신이 고구려를 버렸다면서 안시성의 패배를 예언합니다. 그러므로 안시성의 성주와 백성들이 살아남으려면 당 태종에게 안시성을 순순히 넘겨주고 생명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안시성의 함락은 운명이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고구려 신녀의 예언은 전형적인 운명론(運命論)을 보여 줍니다. 많은 종교들이 운명론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종교에서 운명론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현대인들 중에도 운명, 재수, 팔자, 점 등을 좋아한다면 그는 운명론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운명론적인 종교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기독교는 운명론적인 종교가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예언은 백성들의 미래-운명론적인 면보다는 백성들의 현재의 삶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럼에도 한국 기독교인들 중 일부는 자신의 삶을 운명론적으로 이해합니다.
성경적인 신앙을 가진 바른 기독교인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통치자이신 절대주권자 하나님을 믿습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은 상황에서도 신앙을 가지고 운명론적 상황을 극복해갑니다.
우리의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는 운명론과는 달리 성경이 가르쳐주는 예정(豫定)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계획해 두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미래를 미리 알려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미래를 신실한 계획으로 예정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운명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현재-현실을 힘차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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