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자의 소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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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관리자 | 작성일 | 2004.02.19 16:53 |
우리 대학의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오면 채플을 이수하고 성경 관련 과목을 수강해야 만 한다. 물론 몇몇 학생들은 대학에서 ‘꼭 이런 과목을 배워야하는가’ 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과목 수강은 벌써 십 수 년이나 별다른 문제없이 진행되어왔고 나름대로는 학생들의 현재적 생활과 미래적 삶에 있어 상당한 의미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 대학과 타 대학을 오가는 시간 강사 교수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래도 우리 대학의 학생들의 심성이 가장 바르고 순수하다는 평가를 듣곤 한다. 스승을 스승처럼 대하지 않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가는 세태 속에 그래도 우리 대학은 마음가짐이 바른 학생들이 더 많다는 평가에 대해 자부심을 갖곤 한다. 여느 대학에선 심지어 학생들이 교수들의 꾸지람을 수용하지 못하고 욕을 하고 강의실을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나를 비롯한 우리 대학의 많은 교수들은 이런 경우를 당한 적이 없고, 학생들은 훈계나 꾸지람을 반항 없이 달게 받아주곤 한다.
이런 일련의 긍정적 모습이 모두 기독교 교육의 영향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배운 것은 언젠가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심리학의 이론을 대입하지 않더라도 기독교육의 영향은 잠재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그런 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학원의 구성원 모두는 기독교육의 실천자임에 틀림없다. 비록 과목의 명칭이 다르다고 해도 몸으로 보여 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로 학생들에게는 커다란 기독교육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느 해인가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사은회 장에서 권면의 말 대신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오늘 입을 은총 위해 기도했나요” 라는 찬송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학생들은 그냥 교수가 졸업을 앞두고 사회로 나가는 제자를 위해 노래 한 곡 불러주는 것으로 인식했을지 모른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학생 때 교회를 나가지 않던 제자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청첩장을 보내왔다. 어떻게 그리스도 가정에 시집 갈 수 있었는가를 물었더니, 진의는 알 수 없으나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교수님 때문인가 봐요” 라며 웃는다. 아주 작은 축복이 한 생명의 구원이라는 열매로 맺혀질 수 있다는 전도의 공식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의 소명이 땅 끝까지 이르러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 수행에 있다고 생각할 때 학원 구성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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