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주일) 칼럼 '싸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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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관리자 | 작성일 | 2018.12.01 05:49 |
이전에 자주 불렀던 복음송 가사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니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사람들은 평화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그친 적이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닙니다. 일찍이 주전(B.C) 6세기경에 고대 헬라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는 투쟁 혹은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왕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입니다(H. J. 슈퇴릭히, 세계철학사 상권, 임석진 역, 왜관: 분도출판사, 1981. p. 169.). 역사는 전쟁을 통하여 발전한다는 말이라고 할까요? 그런 생각을 가진 자들이 이후에도 계속 나타났었습니다. 인류의 근대사에서 마르크스 등의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을 통하여 역사의 발전을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갈등과 증오, 싸움은 그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단언(斷言)한다면 죄성을 가진 사람들만으로는 결코 진정한 화해와 참된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도모하는 평화와 화해는 영구적인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생각과 이해관계에 상처가 생기는 순간 평화와 화해는 약한 유리조각같이 깨어집니다.
자신은 이것이 옳다고 주장하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충과 타협이 시도됩니다. 싸우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렇지만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평화, 진정한 화해는 무엇으로 가능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들과 화해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죄인들이 당해야 할 저주와 형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써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탄이 우리에게는 즐겁고 감사한 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성탄절(聖誕節)이 가까워옵니다. 조국과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싸움이 그치고 평화가 도래하기를 고대합니다(눅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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